Flatlander (미국 1995년, 한국 2013년 4월 25일)


플랫랜더는 22세기 초를 무대로 펼쳐지는 SF 추리물로, 책 제목인 플랫랜더(Flatlander)는 작중에서 평지인(지구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인공 길 해밀턴은 평지인이며, ARM이라는 이 시대의 인터폴과 비슷한 기구에서 일하고 있다.

이 시대의 인류는 지구, 달, 소행성대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간은 평지인, 월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간은 월인, 소행성대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간은 고리인(Belter)으로 각각 서로를 부른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그냥 SF가 아닌 SF 추리물이라는 것으로, 지금과는 다른 미래의 기술적 환경적 사실을 토대로 벌어지는 갈등과 사건, 범죄와 트릭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말하자면 랜달 개릿의 다아시경(Lord Darcy) 시리즈의 역 버전, 미래 버전이랄까.(심지어 작자 후기에서 다아시경 시리즈를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길 해밀턴에게는 마스터 숀 오 로클란 같은 조수는 없지만, 대신에 초능력으로 구성된 제3의팔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다. 다아시경 시리즈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본인으로서는 플랫랜더를 읽으면서도 아주 즐거운 독서체험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러한 복합 장르물의 재미는 말 그대로 복합되어 있다는 것이지만, 문제는 반대로 어느 한 장르에 치우친 관점에서 책을 읽게 되면 재미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작자 후기에 보면 복잡 장르를 쓰는 작가의 애로사항에 대해 적어놓고 있는데, 독자 또한 복합된 각 장르에 대한 소양과 그를 즐길 마음가짐이 되어있지 않다면, 이런 장르를 제대로 즐기기가 힘이 든다.

사실 본인도 플랫랜더의 세계관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그 때문에 책 초반에는 스스로 재미를 좀 깎아먹기도 했다. 너무 뒤떨어진 22세기의 컴퓨터 기술, 지나치게 과도한 지구의 인구, 기술적으로 인공 장기와 신체가 완벽하게 만들어지고 있는데도 어째서 굳이 생체이식을 원하는가 같은. 그러나 다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첫 번째 단편이 1969년 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 있는 설정이고, (작자 후기를 보면) 생체이식에 대한 부분은 현시대에서도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이슈이기도 하니.

플랫랜더는 충분히 재미있다. 미래에도 범죄가 있고, 수사관이 있으며, 비록 환경과 관습은 지금과 좀 다를지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오욕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니까 SF적인 세계관 또는 하드코어한 추리에 한쪽으로 너무 매몰되지만 않는다면.

PS : 번역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확실히 읽기에 매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요즈음 외서 번역에 대해서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낫나, 뜻이 통하고 읽기 쉽도록 다듬는 것이 낫나에 대해 상반된 의견들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무엇이 낫다고 단정 짓기는 힘든 면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는 점은 사실이니, 읽기 전에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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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eling (미국 1980년, 한국 2013년 5월 30일)


Madwand (미국 1981년, 한국 2013년 5월 30일)


앰버 연대기의 설정이랄까 세계관이랄까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젤라즈니 풍의 판타지 소설.

아시겠지만 앰버 연대기에는 무수한 패러럴 월드가 등장하는데, 그 중 어딘가에 있을 판타지 세계(이면서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어떤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21세기에 들어서는 SF작가가 판타지를 쓰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만, 20세기 말에는 그러한 일종의 콜라보랄까 외도랄까가 종종 일어나곤 했으니 그리 신기하게 생각하실 일은 아니고.(국내에 출간된 비슷한 성격의 작품으로 고딕 R. 딕슨의 드래곤과 조지를 꼽을 수 있겠다.)

사실 젤라즈니 작품이 근본적으로 히어로물이기도 하고, 검과 마법이 등장하지 않는 판타지라고 할만한 작풍을 가지고 있어서, 판타지를 쓰더라도 별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일종의 앰버 연대기 외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듯 한데, 술술 읽히고 재미도 있지만, 기존 젤라즈니 작품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주인공의 태도나 성격이 진지함 일변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탓에 약간의 건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젤라즈니 팬이라면 잠시 쉬어가는 느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겠고, 팬이 아니라면 일단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와 앰버 연대기를 읽고 팬이 된 다음에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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ゴ-ルデンスランバ- (일본 2007년, 한국 2008년 6월 5일)


독서에 일가견이 있으신 트친님께서 사랑하는 작가로 이사카 코타로를 말씀하셔서, 어떤 작품을 읽을까 하다가 골든 슬럼버로 낙찰.

좋아하는 작가는 뜨문뜨문 있어도 문학 전반에는 무지한 나로서는 별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라 검색을 좀 해보니, 매우 유명한 인기 작가인데다,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읽었던 만화 '마왕'과 '그래스호퍼'가 이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 만화는 크게 감흥이 있지는 않았는데, 넷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화는 원작의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증언을 하고 있긴 했지만, 원작이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라든가, 대중들이 재밌다고 하는 일본소설 중에 실망스러운 것이 얼마나 많던가 하는 나다운 삐딱한 생각을 하던 와중에, 트친님께서 (자기 전문분야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함부로 남발하실 분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만족. 매우 재미있었다.

일상과 비일상을 부드럽게 조화 접합 접목 융화시켜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복선 같지 않은 복선을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타이트하지도 않게 끼워넣어 이야기를 깔끔하게 완성시킨다.

일반적으로 순수 문학에서 설정과 문장이 과용되고 낭비되는 경향이 있다면, 대중 문학에서는 이를 너무 단순화해 씹는 맛도 없고 퍼석한 느낌을 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은 완벽하게 익힌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 그보다는 낚시로 잡은 오오마산 참다랑어의 붉은 살(아까미) 같다는 표현이 더 걸맞을 듯 싶다. 육즙이 넘치는 스테이크보다도, 스르륵 녹아버리는 대뱃살의 황홀함 보다도, 매끄러우면서도 탄탄한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감칠맛과 적당히 씹는 맛이 조화를 이루는 아까미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참치는 일반적으로 뱃살을 최고로 쳐주지만,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중뱃살 대뱃살보다 아까미를 더 쳐주기도 한다. 다만 아까미가 뱃살과 겨루기 위해서는 참치의 질이 매우 좋아야 하지만.)

맘에 들면서도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앞서도 얘기했듯이 일체의 낭비와 과용이 없다는 점인데, 아무래도 작가는 벗겨 낸 야채 껍질로는 육수를 우리고, 짜장면은 소스까지 다 먹어치우고, 김치는 꼬다리까지 다 씹어먹는 인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건 사실 나...) 다만 그렇게 만든 육수와 짜장면과 김치가 모두 맛이 훌륭하기에, 그렇게 남김없이 깔끔하게 먹는 것이 흉하기는 커녕 오히려 보기좋게 느껴진달까.

소설을 넓게 많이 읽지는 않고, 일부 좋아하는 작가와 장르를 편식하는 나이지만, 이사카 코타로는 그 편식의 카테고리에 새롭게 추가된 작가가 되었다.(이 카테고리에는 테드 창, 야마다 에이미, 다니엘 페낙, 로저 젤라즈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소설을 즐기는 분 중에 이사카 코타로를 아직 읽지 않은 분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아마도 조금 가벼운 소설을 선호하는 분도, 조금 무거운 소설을 선호하는 분도 모두 좋아할 만한 작가가 아닐까 한다.
Posted by 미식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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